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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어른, 도시 문헌학자 김시덕의 어디서 살lives 것인가? 어디를 살 buy 것인가? 남대문과 동대문이 남은 이유.

by 로토루아8 2022.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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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울을 주제로 역사와 문화, 사람을 보다! 그 땅끝엔 무엇이 있는가?! 도시 문헌학자인 김시덕의 강의입니다. 

김시덕은 스무 살 때부터 걸어 다니며 도시탐방을 했는데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두고 도시에서 건물보다 더욱 중요한 건 길이라고 해요. 건물은 늘 바뀌지만 마지막까지 남는 건 길이거든요. 삶의 흔적이 남은 길에 주목해주세요. 살고 싶은 땅을 찾아서!!

 

 

 

오늘의 주제는 어디서 살lives 것인가? 어디를 살 buy 것인가?

조선시대의 서울인 한양에는 사대문이 있었죠. 사대문은 조선시대 한양도성에 세운 4개의 성문으로 숭례문, 숙정문, 흠인지문, 돈의문이 있었죠.

 

 

사대문과 주변지역인 한양,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략한 일본 무장인 불교토 가토 기요마사와 기독교도 고니시 유키나가가 있는데 이들은 두 문을 통해 각각 한양으로 입성하죠.

 

 

일제강점기 일제의 도시 계획에 걸림돌이 된 성곽, 이유는 조선정기를 꺾기 위해? 성곽을 없애기로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도시계획상 일본 본토의  사대문도 다 파괴를  했다고 해요. 교통 장애를 이유로 없애는데 성곽과 남대문과 동대문을 철거하려고 했으나 일본 재류민들의 반대운동으로 이런 이유로 남대문과 동대문이 남게 되었다고 해요.

 

 

사대문에 담긴 다소 씁쓸한 역사죠.

 

 

징비록은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유성룡이 임진왜란에 대하여 쓴 책인데 

 

 

양근과 지평이 합쳐져 양평이 된 거죠. 이것이 동대문을 통해 침략한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의 기록입니다. 

 

 

한양 입성 기념을 위해  철거를 취소한 일본은 남대문을 비껴서 철로를 설치하게 됩니다. 

 

 

같은 사대문인데 숭례인 남대문은 국보고 흥인지문인 동대문은 보물인 이유는 뭘까요?  현재 호수 없이 명칭으로만 표기하는데 가토 기요마사가 남대문으로 왔고 고니시 유키나가가 동대문이에요. 일본에서 가토 기요마사가 인기가 많았어요. 인기에 힘입어 남대문은 국보로 한 거라고 해요. 반면 고니시 유키나가는 기독교도 비교적 인기가 없어서 동대문은 보물로 지정한 거라고 해요.

일제강점기 때 첫 지정을 한 건데 국보와 보물의 효율적 관리라는 명목으로 조선총독부에서 조선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을 제정합니다. 

국보,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등을 해방 이후 재정비한 이유는 뭘까요? 일제에 의해 수립됐기 때문이라고 해요.

 

 

1999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171호 순천왜성으로 격하 재지정하는 거처럼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해 지금도 개선하는 중이라고 해요.

동대문이 사실 동대문구가 아닙니다?!

 

 

서대문도 과거 종로구에 있었는데 서대문구 로고 속에 독립문이 있죠.

 

 

각각의 사대문을 벗어나 위치에서 붙여진 동대문구와 서대문구.

 

<출처: tvN 어쩌다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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