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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클라스, 박환교수,잊혀진 영웅들, 그들 모두가 안중근 이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by 로토루아8 2018.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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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주년 광복절이었죠~ 지난 8월 15일

잃었던 국권을 회복한 지 올해로 73년 되는 해로 8월 15일 이땅의  빛을 되찾은 날

자주와 평화를 향한 태동

마을과 장터에 격문이 붙고 손에서 손으로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습니다.

분연히 일어선 청년이 밤을 지새우며 태극기를 그린 소녀가

모든 것을 빼앗긴 삼천만이 피로 일궈낸 기적 

이 땅의 평화와 독립을 위해 스러져간 그 이름없는 연혼들을 오늘 불러봅니다.

한국독립운동사의 개척자 박환교수

자식도 대학에서 역사 강의중이라고함


독립운동가들도 인식했던 현실적 난관 비관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힘을 모을때

조국이 해방될 것이라 믿었던 독립운동가들

35년동안 쉼없는 독립운동이 연합국 승리에 일조했고 그러면에서 독립은 우리가 일궈낸 것이라고

이게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심경이지 않았을까..

대한의 독립을 위해 

그리고 우리가 미처 몰랐던 잊혀진 영웅들 그들 모두가 안중근 이었다.

신흥무관학교 만드신분인데  땅이 엄청 많은 분이었죠

선생과 가족의 생계가 위태로울 정도까지 갔었다고

많은 사람이 볼수 있으면 좋을텐데... 조그맣고 구석된곳이라 잘 모른다고..

3.1 운동에 참가해 만세운동을 주도했죠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김좌진 장군..

교과서에 담지 못했지만 기억해야 할 인물 다시금 주목해야 할 독립운동가

안중근을 후원한 김두성을 찾아라!!

배후를 찾아내려는 일제의 집요한 심문

김두성이란 인물이 없어요.

잔혹한 고문에도 동지들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으로 가명을 씀

일제의 수사에 혼선을 준 가명의 인물들

김두성의 조건은?

강원도 출신이고 안중근과 함께 러시아에서 활동을 했고 대표적 항일투사임

김두성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강원도 춘천에서 학자, 의병장으로 활동을 했다고해요.

국권 피탈후 의병장 유인석은 의병활동 지원을 위해 연해주로 망명을 함

90년대 탈냉전후 러시아, 조선관련 외교문서, 비밀서신이 공개됐는데

안중근을 후원했던 인물이 주러시아 한국공사 이범진이었음


학계의 새로운 주장에 따르면 구한말 항일운동의 총 지휘자인 고종황제

그리고 최근에 새롭게 대두된 인물이 시베리아 항일 운동의 대부로 활동에 비해

일므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임

최재형은 노비였던 아버지와 기생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게되요.

1860년대 함경북도를 덮친 흉년으로 관리들은 나몰라라하고

1860년대 가난과 학정을 피해 러시아로 도망을 갑니다.

배고픈 가족의 새 보금자리가 된 연해주

1869년에만 약 6000명의 조선인이 연해주로 이주를 했어요.

러시아에서 토지를 제공하고 세금 면제등 포용정책을 시행함

러시아 학교에서 러시아어를 익힌 조선소년

수년간선원 생활을 하며 생활기반을 다진 최재형

요즘말로하면 워킹 홀리데이죠

러시아 주요 도시에서 생활하며 단기간에 러시아문화를 마스터합니다.

통역과 군수산업으로 부를 축적하고

재력가면서도 베푸는 삶을 살았던 최재형

최재형의 별명이 페치카? 난로

난로처럼 따뜻한 사람

많은 조선인 학생들이 졸업생으로 대도시 학교로 유학도 지원해줌

가난과 학정에 등져야 했던 조국이지만 연해주의 재력가에서 독립운동가로 거듭남

학자들이 주목한 이유가 시베리아 항일 투쟁 운동의 중심인물이었기 때문이에요.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고 러시아군 통역관 활동중에 간도관리사 이범윤을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러시아를 지원했던 고종황제

대한제국의 항일운동을 목격한 최재형은 이범윤과의 만남이 운명을 바꿔놓게 됩니다.

일본이 승리할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박영효는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한말의 개화파 정치가에요.

일본이 이렇게 부강해진 이유는 뭘까?

계몽하고 공부시키지 않으면 나라를 빼앗길수 있겠다

동의회 결성 취지문

동포들이여, 무장 투쟁으로 국권 회복을 이뤄냅시다.

총재 최재형을 중심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이위종

ㅋㅋㅋ


항일투쟁의 선봉에 선 의병부대 좌영장 엄인섭

동의회 의병부대 우영장인 안중근

한사람이 아닌 단합해 이뤄낸 결과였음을...

동의회는 의회가 아니에요.

의리로 뭉친 사나이들~

국내진공작전은 두만강 근처의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해 국내의 무장투쟁으로 연결하는 작전이에요.

1905년 러일전쟁에서 패한 러시아군대는

조선의 의병들

러시아 패잔병을 통해 무기구입을 저렴하게 하고 러시아어 능통한 최재형이 러시아군과 우호적 관계

1908년 2개월 간의 짧은 승리후에 이어진 패전으로 최재형은 결단을 내립니다.

근거지를 대도시로 이동하고 신문을 통한 선전활동을 하기로

대동공보는 1908년 창간된 러시아 한인신문으로 미주, 하와이, 멕시코 등지까지 발송함

항일 투쟁의 전환점에 선 최재형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보게됩니다.

의열투쟁은 소수 인원이 식민 통치기관을 폭파해 침략 행위에 앞장선 일본인을 사살하는 무력투쟁이에요.

그러던 중 전해진 이토 히로부미의 소식

의거의 적임자 동의회 우영장, 안중근

동지를 규합해 결사단을 구성한 안중근 의사는

최재형의 비호를 받으며 단지회를 결성함

거사를 앞두고 모인 12명의 청년

단지회의 또다른 이름은 동의단지회에요.

그렇게 보고 있다고하네요.

최근 밝혀진 단지동맹의 정식 명칭은 동의단지회입니다.

12명의 항일투사 대부분이 동의회소속으로 일종의 특공대임

뜻을 같이했던 사람들이 더불어서 함께하겟다는 어떤 강한 약속을 했던것이죠.

도열한 의장대를 사열하던 이토히로부미 

군중을 뚫고 안중근이 쏜 3발의 총탄

안중근의 배후, 김두성은 누구일까

안중근 의사를 위해 변호사를 파견하고


안중근의 모든 안위를 보살폈던 인물임

김두성은 최재형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일제에 국권을 강탈당하고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

러시아에 압력을 행사한 일제는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고민에 빠진 최재형 그런 고민속에서 조직한 단체가

상인들의 조직으로 위장해 무장투쟁을 준비함

연락책으로 활동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죠.

밀정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만나기 좋은 장소

1910년대 권업회를 통해 활발히 항일투쟁을 했는데 전환점이 된게 1919년 3.1 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총장으로 최재형이 임명됨

재정적 지원과 동시에 구심적 역할을 수행함

시기에따라 천양지차

1914년 제1차 세계대전때는 러시아가 일본과 손을 잡아서 러시아를 통해 압박을 했죠

탄압을 피해 지하화

1919년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함 같은해에 최재형이 임시정부 요직에 임명되었고

러시아 항일 세력 파괴 작전에 나선 일제는

대대적인 학살을 자행함 연해주 지역 동포 5000여명 사망

1920년 4월 연해주 참변

대다수 독립운동가를 재판없이 처형함

최재형 김이직등 한인 지도자도 처형함

러시아 한인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독립운동가 최재형

동의회 의병장인 엄인섭은 독립투사에서 밀정으로

항일투쟁의 선봉장이었던 엄인섭은 학자들도 몰랐다고

감쪽같이 감춰졌던 임인섭의 실체

1911년 부터 임인섭이 정보를 보고했다.

밀정임이 드러나게되는 간도 15만원 사건

체포과정에서 탈출한 독립운동가 최봉설이 남긴 회고록을 보면

일제가 운송중이던 15만원은 현재가치로 무려 150억원이에요.

간도 15만원 탈취 의거는 일제의 15만원을 탈취해 독립군 무기를 구입하려던 계획임

하지만 탈취와 동시에 체포됨

밀정 엄인섭의 밀고때문이었다고해요.


앗...저도 그럴거같아요....ㅠㅠ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며 만난 독립운동가와 그의 후손들

전 재산과 가족의 운명을 독립에 헌신한 결과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조국에 바쳤지만 방치되고 있는 독립운동가의 후손들

유해는 못 찾았다고..

연해주 참변 당시 고문을 받다가 도주한 최재형을 총살함

처형장소를 은폐해 유해조차 찾지 못함

유해를 찾지 못해 이름만 새겨진 비석

2015년 최재형 부부의 위패를 봉안하고

차마 꺼내기 부끄러운 사건이 있엇는데

역사학자들을 통해 입증된 최재형의 항일투쟁기가 독립유공자로 포상과 묘역을 조성

가짜 후손이.. 가짜 유해를 안장후 포상을 가로챘다고하네요.

독립투사에 대한 뒤늦은 관심이 초래한 결과라고..

우리가 독립운동 후손 분들을 모른채 살아간다면 후손들한테 나라를 위해 희생하라는 말을 절대 못할거같다고

그럼에도 여전히 생소한 이름인 최재형

더 늦기전에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광복을 맞은지 73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찾지 못한 수많은 이름들..


<출처: jtbc  차이나는 클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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