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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까당 서대문형무소 탐방기

by 로토루아8 2018.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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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광복 73주년이에요. 알고 있으셨나요?

광복절 특집으로 준비한 일제강점기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

다크 여행지 처음 장소는 서대문 형무소에요~

독립투사들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곳으로 다크 투어리즘이란?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이나 재난, 재해가 일어났던 곳으로 가는 여행이에요.

제2차 세계대전 때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대표적으로

당시의 고통이 느껴지지만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방문하는 곳임

그리고 9.11 테러가 일어났던 그라운드 제로까지 역사의 어두운 면을 되새기며 반성하는 의미의 다크투어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말것!!!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가 되어 떠나는 서대문형무소 다크 투어~

수형기록카드 전시관으로 서대문형무소에 걷혔던 약 5000여 명의  독립운동가 수형기록카드를 전시, 추모하는 공간임


1724는 도산 안창호의 수감번호

서대문형무소에 무려 세번이나 투옥되었던 도산 안창호

일제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보이는 표정

공포를 느낄 상황에서도 절대 굴하지 않는 당당한 눈빛

18살의 꽃다운 나이에 옥중 순국한 유관순 열사

비슷한 마음이었을거라고,..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게..

다음장소는 지하고문실로

임시구금실은 취조전, 수감자를 임시로 구금하던 곳으로 고문으로 고통받는 동지들의 비명과 폭언을

들을수 있는 곳으로 배치해 독립운동가에게 위협을 줌

임시구금실에서 결백이 밝혀지지 않으면 본격적으로 고문을 시작

물고문은 강제로 수조에 머리를 집어넣거나 코나 입에 물을 부으며 호흡을 곤란하게 하여 고통을 줌

상자고문은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은 상자에 사람을 집어넣은 뒤 마그 흔들어 못에 찔리게함

고문 받던 사람들의 소원 중 하나가 죽는겁니다.

이 고통을 계속 이어가는게 너무 힘든 거죠..

만세만 외쳐도 끌려갔던 일제강점기

들어가는 것만으로 고통인 좁은 벽관

벽관 고문은 옴짝달싹할 수도 없이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하여 앉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고통을 주었던 고문이에요.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실제로 투옥되었던 옥사로

세 옥사를 한눈에 효율적으로 감시하는 구조임

사람들을 괴롭히고 다른 나라를 억압하는데 머리를 썼다는게 문제죠.


먹방은 24시간 내내 빛이 한 줌도 들어오지 않아 마치 먹물처럼 깜깜하다 하여 먹방이라 부름

빛이 없으니까 시간이 가늠이 안돼요.

앉았다가 일어나기만 가능하고 당시 일본의 잔인함을 엿볼 수 있는 먹방

여기서 편지를 쓰셨던 분들은 유서를 쓰는 기분이었을거라고...ㅠㅠ

형무소 안에 이렇게 큰 나무는 일명 통곡의 미루나무

사형장 바로 옆에 있는 통곡의 미루나무

독립운동가들이 사형장에 들어가면서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원통함을 

이 나무를 붙잡고 눈물로 토해내며 통곡했다고 전해짐.

독립운동가들의 원통함을 마지막으로 들어주는 역할을 했던 나무임 원래는 사형장 안에 한 그루의 미루나무가

더 있었는데

사형장에서 순국하신 선열들의 한이 서려 잘 자라지 못하고 죽었다는 일화가 전해짐

정말 죄를 지어서 들어간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더 억울하고 원통했을 마음..

이곳은 사형장으로 1923년 지어진 목조건물로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던 애국지사들이 순국했던 장소에요.

사형 집행 방식은 교수형이었으며 억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선열들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곳임

"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다음   소원은 무엇이냐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것이외다- 백범김구, 나의 소원

서대문 형무소를 둘러본후 만난 태극기에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고..

애국지사들이 꿈꾸던 나라가 지금의 대한민국이 아닐까..

매년 광복절마다 특집 방송들이 반복되는데 그때만 느끼는 것같아서..

독립투사들의 희생을 평소엔 잊고 사는것에 대한 부끄러움..

서대문 형무소 역사과에가서 고문 받는 장면을 보면 

저도..그시대에 살았다면..그럴거 같음...ㅠㅠ

그만큼 고문이 엄청났다고.. 그러나 가혹한 고문에도 신념을 잃지 않았던 독립투사들

고통 속에서 오히려 굳건해진 신념으로 독립을 위해 저항한 것!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이 이어져~ 광복을 맞이하게됐는데

서대문형무소에 갇혀있으면서도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독립운동가들

운명의 그날, 1945년 8월 15일 정오

일본 천황은 무조건 항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다 서대문형무소에 갇힌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해방 당일에도 사형을 집행한 일본

이는 진실일까요? 혹은 거짓일까요?

위안부들에게도 비슷한 일을 저질렀던 일본

상당히 문제가 되는 진실인데

독립운동가이고 정치가인 여운형이 임시정부 수립에 가담했고 임시의정원 의원을 역임함

해방이 되던 날 총독부에서 일본인들을 지켜달라는 말을 들었던 여운형은

그렇다면 서대문형무소에 있는  수감자들 역시 안전하게 보호해 달라


이병호가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던 것

여운형과의 약속을 깨고 사형이 집행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서대문형무소 관계자들이 자체적 판단으로

집행했을 수도.. 그날 사형된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한 확인도 어려운 상황임

해방후 9월초에 미군이 우리나라에 상륙했는데 

미군에 환호하는 조선인들에게 일본인이 총을 쐈다?!

해방직후에도 끔찍한 일을 겪었던 것이에요.

우리가 힘을 가지지 않는다면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다!!!

공식적으로는 가족들에게 인계하게되어 있어

시신 인도를 하더라도 비밀스럽게 한다는 것.

고문으로 인한 상처를 숨기려 했던 의도가 있다고 추측 가능함

서대문형무소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일들을 짐작게 하는 시구굴

아무래도 한번 다녀와야겠어요.. 화면으로만 봐도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출처: tvN 곽승준의 쿨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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