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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난거

선을 넘는 녀석들, 마스터X- 연산군의 폭정.

by 로토루아8 2021.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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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정조가 사랑한 창덕궁 후원, 창덕궁 후원이 정식 명칭이죠. 학교에서도 이렇게 한 사람씩 주제 정해서 같이 얘기하고 했다면 역사수업이 훨씬 재미 었을 거 같아요. 지금이라도 선을 넘는 녀석들을 통해서 배우고 알게 된 재미가 있어서 너무 좋아서 요거 추천드려요.

 

 

 

연산군일기에 나오는 내용으로 연산군이 창덕궁에 동물원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죠.

 

 

연산군에세 창덕궁 후원은 사치와 향락의 공간이었고 연산군과 달리 정조는 조선시대 왕실도서관인 규장각을 창건했죠. 같은 공간을 사랑하는 방식조차 반대였던 연산군과 정조. 

 

연산군은 무오사화를 통해 그동안 왕권을 견제하던 사림파를 제압합니다. 왕권강화를 꾀하던 연산군. 왕권 견제 역할을 했던 사림파의 삼사 이들의 충언이 못마땅했던 연산군은 무오사화를 통해 사림파를 대거 숙청합니다. 무오사화를 통해 왕권 강화를 하려 하죠.

 

무오사화 이후 연산군의 폭정.

술을 따라줬는데 안 마시면 국문을 하고 국문은 중죄인을 신문하던 일로 사실상 고문입니다. 연산군 앞에서 웃음을 보인 내관은 곤장 100대 시 한수 지어오라고 했는데  두 수를 지어서 처형, 잔칫날 철갑 입은 무장을 시끄럽다고 처형,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연산군의 폭주.

연산곤의 폭주를 일으키는 두 가지 방아쇠가 있는데 첫 사건이 이세좌 사건입니다. 긴장감이 감도는 연회장 안 갑자기 이세좌를 불러 술을 주는 연산군, 긴장한 나머지 용포에 술을 흘린 이세좌, 연회장에서는 그럭저럭 넘어갔는데 큰 사건의 도화선이 된 그날이 된 거죠. 

 

 

즉각 국문하여 죄상을 밝혀내라는 연산군. 이세좌가 떨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왕명의로 폐비 윤 씨에게 사약을 전달한 게 본인이 의도한 게 아니더라도 찝찝한 마음이었을거라고 하네요. 연산군의 기세등등한 모습에 심리적으로 위축되었을 거라고하네요. 그러면 술을 쏟은 이유가 설명이 잘 돼요.

모터 컨트롤이라는 분야가 있는데 손 움직임을 연구하는 분야예요. 연구결과 쉬운 동작일수록 생각이 많아지면 못하게 됩니다. 단순한 행동일수록 생각도 단순해야 하는데 잘해야 본전인 단순한 동작은 무조건 실수하게 되죠. 긴장할수록 쉬운 행동도 실수하게 돼요. 연산군 어머니에게 사약을 내렸던 이세좌는 그 사실을 알고 연회장에서의 사소한 실수를 빌미로 이세좌를 자진의 명을 받고 자결했죠.

 

그리고 두 번째 사건이 홍귀달 사건입니다.

예전에는 궁궐에 여인을 들일 때 최고 명문가의 여식들을 뽑아서 복잡한 검토 과정을 거친 뒤 입궐했는데 홍귀달의 손녀도 후보 중 한 명이었는데 손녀딸이 실제로 아파 불가피한 사정을 얘기했는데

 

 

이세좌, 홍귀달 사건이 일어나던 당시에는 이 사건들이 불러올 화를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어요. 연산군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알았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몰랐던 연산군. 폐비 윤 씨인 어머니가 얼마나 비참한 죽음을 당했는지 진실이 밝혀지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바로 갑자사화의 불씨를 댕긴 인물이 권간 임사홍입니다.

연산군과 간신의 술판이 벌어지던 1504년 3월 19일.

 

 

권간 임사홍이 폐비 윤 씨의 죽음에 대해 폭로한 이유는 연산군의 신임과 권력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폐비윤씨가 죽음을 당할때 흘린 피붇은 적삼을 연산군에게 전해졌다는 기록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야사에는 있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없는 기록이에요. 그래서 드라마의 극적인 장면으로 야사의 내용이 사용됐죠. 조선왕조실록과 야사에 의해 차이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되는 시점입니다.

 

 

 

연산군은 폐비윤씨의 죽음을 언제 알았을까요? 왕이 된 후 또는 왕이 되기 전?

폐비 윤 씨 사사 사건이 당시 연산군 7세였고 세자로 책봉된 게 8살이에요. 미국 UC 버클리대학교 교수인 인지 심리학자 앨리슨 고프닉 말에 따르면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고 해요. 어른들은 아이들이 생각한 것보다 모르고 있다. 연산군에게 적용시켜보면 연산군이 알고 있따는 걸 어른들은 모르고 있는 거죠.

 

어머니의 원한을 알게 된다면 어머니가 받은 고통이 그대로 자식에게 전달되니까 실제로 적삼을 줬다면 연산군에게는 독이 되었을 폐비 윤 씨의 잘못된 선택이죠. 강한 자는 오래 살아남는 자가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말이 있듯이 오래 살아남아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능력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해요.

아이가 원한을 가지고 성장한다면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내가 겪은 분노를 내선에서 끝내는 것이 자식의 공존력을 높이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적삼을 준 것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폐비 윤 씨가 연산군에게 원한을 대물림했어야 했나 싶다고, 만약에 어머니의 원한을 모르고 살았다면 연산군의 생애는 밝고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제 유명한 사건인 1504년 갑자사화가 발발합니다. 연산군의 피의 복수가 시작됩니다.

폐비 윤 씨인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된 이후 신하들에 대한 연산구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엄청난 피바람이 휘몰아치게 됩니다. 어머니의 죽음과 연관된 정 씨와 엄 씨를 찾아가 몽둥이로 마구 패기 시작한 연산군, 정 씨의 아들인 이항과 이봉을 소환해 캄캄한 어둠 속 누군지도 모른 채 어머니를 죄인이라 속여 때리게 시켰다고해요. 정씨의 두 아들 중 한 명은 누군지 모른채 때렸고, 나머지 한명은 어머니임을 눈치채고 통곡을 했죠. 이와 관련된 야사에 의하면 사람을 시켜 성종의 후궁인 엄 씨와 정 씨를 때려 죽인 후 

 

 

항과 봉을 불러 엄씨와 정씨를 가리키며 이 죄인을 치라하니 항은 어두워서 누군지 모르고 치고 봉은 어머니임을 알고 차마 장을 대지 못하니

 

 

정말 한 명이라도 연산군에게 무한 사랑을 줬다라면 정말로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 찬란한 조선의 역사가 더 눈부시게 커졌을 거 같아요.

 

<출처: MBC 선을 넘는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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